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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청춘의 독서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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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작성한 독후감을 블로그로 옮겨봅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

 

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한 소년의 우화는 그 소년의 순진함이나 용기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진실은 반드시 진실대로 밝혀지기 마련이라는 인간 생활의 진리를 말하려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이 우화의 해석은 대체로 그 우화를 구성하는 일련의 인과적 요인들이 엮어내는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가장 어리석은 소년에 의해서 온 사회의 허위가 벗겨지기까지 그 임금과 재상들과 어른들과 학자들과 백성들은 타락과 자기부정 속에서 산 셈이다. 마침내 한 어린이가 나타나서 보다 현명한 어른들을 타락에서 구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이 왕국을 지배한 타락과 비인간화와 비굴과 자기 모독, 그리고 지적 암흑 상태가 결과한 인간 파괴와 사회적 해동은 무엇으로 측량할 것인가. / 전환시대의 논리

 

그 사람들은 많은 구조가 인간이나 창조자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또는 단순한 변화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만약 옳다면, 나의 학설에 매우 치명적인 것이 된다.(...) 생물체가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아름답게 창조되었다는, 모든 이론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견해에 대해서는, 나는 우선 미의 관념은 그 찬탄 대상에 존재하는 어떤 진정한 성질과는 관계없이 분명코 마음의 성질에 의한 것이며, 또한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라는 관념은 본질적이거나 불가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만일 아름다운 사물이 단지 인간을 만족시키기 위해 창조되었다면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후보다 지구의 표면이 덜 아름다웠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에오세의 아름다운 나사형 또는 원추형의 조개나, 아름답게 조각된 제2기 시대의 암모나이트는 인간들이 후세에 이르로 표본실 속의 그것을 보고 찬탄하기 위하여 창조된 것일까? / 종의 기원

 

높은 도덕 기준은 한 개인이나 그 후손에게 부족 내의 다른 구성원에 비해 약간의 이득을 줄 수도 있고 전혀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좋은 품성을 갖춘 사람이 늘어나고 도덕성의 기준이 진보할수록 부족 전체는 다른 부족에 비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높은 수준의 애국심, 충성심, 복종심, 용기, 동정심이 있어서 항상 남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 부족은 다른 부족에 비해 성공을 거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선택이다.

 

 

 

     개인적인 감상

 

이북을 구매하여 출퇴근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읽은 터라(세상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대신 목이 많이 아팠다) 제대로 집중해서 읽지는 못한 것 같지만, 다 읽고 나니 책 여러권을 한 꺼번에 그것도 동시에 읽은 듯한 느낌이다. 여러권의 책에 대한 유시민 나름대로의 독후감 또는 해설을 정리한 그런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열거된 모든 책들은 한 번도 읽어 본 적도 없고 또 관심도 없었던 책이다. 그 중 몇 권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읽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로 좀 고리타분한 내용인듯 하다. 내가 인문학도나 사회학도 였다면 좀 달랐을까? 내게는 정치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일말의 관심조차 있지 않다. 그저 사회에 녹아들어 흘러가는 톱니 바퀴와 같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가슴속에 와닿는 몇몇 구절들은 정말 감명 깊었다. 나를 일깨워주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은, 자연선택에 관한 내용이 그러하다. 다시 읽더라도 사회적 통념과 같은 그런 느낌의 문장이지만, 잊고 살았었다. 그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성공이라는 길은 바로 우리 옆에 있었다. 물론 꼭 성공하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왕 태어나 살아가는 거 무언가 이루고 싶지는 않을까..? 언제부터 그런 욕심이 없어지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지 모르겠지만, 나를 일깨워 주는 문장에 고마움을 느낀다. 다시 성공으로 돌아가,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역시 내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남이 대신 노력해주는 게 아니다. 또 나 혼자 노력해서도 안된다. 내가 노력을 하고 주변 사람을 돕고 공동의 이익을 실천 하면, 또 주변 사람도 함께 공동의 이익을 실천하면, 함께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주변 사람을 선동하고, 그런 마이너스 적인 감성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난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 부터인가 입에서는 불평 불만만 쏱아지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변화하게 만들었는가.. 이것도 진화론인가...? 성공과 도태.. 도태의 길로 가는 그런 진화론. 이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좀 더 몸부림 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가을 했다. 진화의 갈림길에서 사라지지 않고 진화해 나가기 위해서.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나에게 와 닿지 않고 공감되지 않고 재미 없고 어렵기만 하지만,(사실 작가가 자신의 지성을 자랑하거나 또는 정리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문장을 얻어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한다. 지금의 생각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다시 일상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마주하면 금세 좌절하고 포기하고 불만을 얘기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 때엔 또 다른 책을 꺼내 들어야 겠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러하고 있는 것 처럼.

 

 

     회사에 적용할만한 아이디어나 제언

 

회사라는 관점에서 생각 했을 때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한 부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종의 기원 편에서 다윈이 주장한 자연 선택과 관련된 부분이다. 회사는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요소 이다. 그 회사를 구성하는 구성원은 인간이다. 인간중에서도 어느 정도 지적수준을 만족하고 또 어느정도의 도덕 기준을 만족 하는 사람이 조건에 의해 발탁되어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원래 초기 구성원을 중심으로 뽑힌 직원들을 부족원이라고 보았을때 높은 수준의 애사심, 용기, 동정심..등의 감정과 항상 남을 도울 준비가되어 있고 회사 구성원 모두에게 공동의 이익이 되도록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가득하다면, 그 조직은 성공한 조직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과거와 비교해보자. 나는 과거에 제법 큰 공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물론, 정규직은 아니고 단순 일용직에 불과 했고 그 사람들 틈에 녹아들 그런 애사심이라곤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지만, 남을 관찰하는 것을 취미로 삼을 많큼, 갉고 닦은 관찰력이 있었다. 그런 큰 조직도 작은 조직의 집합체이며, 작은 집합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애사심, 공동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등등의 모습을 종종 보았다. 특히 나이가 있고 직급이 높은 사람일 수록 더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이다 보니 말단 사원이나 대리들도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윗사람들에 대한 불평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애사심에서 나오는 그런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의 속마음이야 알길이 없지만, 회사가 잘되야 나도 잘된다 라는 생각이었을지 아니면, 정말 안정적인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고 평생을 일할 그런 애사심에 우러러 나온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무언가 나서서 창의적으로 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이에 비하면 지금의 나의 위치는 일단 바쁘다는 핑계로 일에 쫓겨가며 뭔가에 창의력을 발휘하기에는 어려운 모습을 보이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입사 초기에는 열정도 있고 창의력도 무궁무진하고, 각종 회사들 면접시에 그런것들을 내세워 보일 정도의 그런 적극성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고객을 대하며 변해갔던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어느정도 환경이 마련되고 애사심을 가지고, 내가 희생함으로서 회사 구성원들 모두가 공동의 이익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게 나의 이익이 되기도 하고, 좋아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직은 뜬구름에 머물러 있는 이런 생각들이 정리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또다른 좋은 책을 만나게되면 그리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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